Name of first person interviewed: 김태환, 서울, 한국
- 미국에 언제 오셨습니까?
- 3월 1984년
- 미국에 처음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법치국가
시장경제
대학과 대학원 교육에 기회를 부여하는 나라
고등교육과 전문직 진출의 여건을 마련할 수 있는 나라
- 미국 사회에서 일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교육:
한국에서의 대학전공을 바꾸는 과정에서 확실한 미국 대학이나 대학원을 정하지 않고 형제 초청영주권만 받아 미국에 먼저 입국한 후 대학원 진학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여름방학 (8주) 동안 학부 전산학 4과목을 이수할 수 있는 중서부의 작은 전산학 대학과정을 발견하여, 이과정을 마친 후, 한 남부의 주립대학원의 전산학 석사과정으로 옮길 수 있었고, 곧 학비면제와 조교 (매달 $720) 을 받아 생활 할 수 있었습니다.
직장: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입학이 되었으나 새로운 가족이 생겨 소프트웨어 개발직장을 교수님추천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한국교육과 동질적문화의 상대적 획일성에 따른 토론, 대화, 협상능력, 자기표현의 부족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운 데 따른 문화적 소외와 업무부담이 가중되는 피로 현상일 것입니다. 이점은 중년이 되어 가면서 사실 더 어려운 점이 되고,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민자 들에게 늘 어려운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제 적성이 연구개발에 더 맞는다고 판단되어,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사에서 필요로 하고, 제 적성에 더 잘 맏는다고 판단된 전자공학으로 대학원 과정을 학기당 1과목씩 이수하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어려움에 처해 두 번의 해고와 직장이전이 있었지만, 결국 정부 연구소로 옮겨, 대학원 촉진이수 과정에 선발 될 수 있어, 결국 10년 후에 전자공학 박사과정을 인근 주립대학에서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개인 재정문제는 고용안정과 적절한 주거환경 이주, 은퇴준비 연금 관리등이고, 아이는 운동 (수영훈련)에 투자한 이외에 다른 사교육에 지출 할 필요가 없었고, 이는 사실 대학진학에 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학점만으로는 주립대학에 가기 어려운 경우에도, 미국은 다양한 학생선발권이 있는 많은 대학이 있으므로 더 전공과정에서 명성이 높은 사립대학에 학비보조를 받고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개인은퇴가 과도하게 본인의 현재 시장판단에 맏겨지기 때문에
-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금방 이민해 온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미국에서 주거환경은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고 (지역간 소규모 수영, 농구, 테니스 , 암벽등반, 태권도, 체스 경기등..) 직장에서 출퇴근이 너무 고되지 않고 만일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대학(원) 등에서 너무 멀리하지 않는 곧, 또 배우자들 또한 운전, 학업, 직장생활등을 하기 편리한 지역을 잘 골라야 할 것입니다. 또한 중서부, 남부지역과 동서부해안지역은 상당한 주거비 생활비 차이가 있으므로, 고정적 수입을 가지시는 분들의 많은 고려가 필요하신 부분입니다.
전문직은 많은 재산을 형성할 기회가 적습니다만, 미국은 대학졸업 후 이민을 하시는 분들이 한국에서 받기 어려웠던 전문직 교육을 다시 받을 기회가 많은 곳입니다. 하지만,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께도 마찬가지라 여겨지는 점은), 인간관계가 갖는 어려움은 한국서 알고 계셨던, 지연, 학연등보다 매우 복잡하고, 또한 빠르게 변하는 국제환경에서 개인과 가족의 재정적 독립은 전문적 지식뿐 아니라 절제된 이성, 감성과 표현력, 상황이해력, 통찰력등이 합쳐져야 이루어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재정적 자립은 (성공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아 임의로 주제를 바꾸었습니다: 필자) 독서와 자기 개발을 위한 좋은 생활력에 달린 점은 어디에서 살 더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미국은 특히 한국 생활에서의 급하고 자기 성취를 강조하는 사회가 아니라, 드러내지 않고, 여유를 지니고, 모나지 않게 꾸준히 실적을 쌓아야 유능하게 인정되는 사회라는 점을 느낍니다. 이 문화의 차이는 무수한 천체가 소멸 탄생되고 시간과 공간, 생명자체가 계속변질되는 거시적, 보편적인 우주안에 살면서도 미시적, 한시적인 체험, 소통, 소비가 상대적으로 사회문화의 더 많은 비중을 갖고, 따라서 꾸준한 생산성을 축적하기 어려운 어떠한 문화로부터도 커다란 도전이라 느껴집니다.
Name of second person interviewed: 김은주, 한국1. 미국에 언제 오셨읍니까?
1988년 5월 22일
2. 미국에 처음 오셨을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읍니까?
남편이 재미교포였기때문에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오게되었읍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부모님이 한국에 계셨기때문에 미국에 오는 비행기안에서 계속 울면서 왔고
그래서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때 좋은 느낌보다는 막막하고 외로운 느낌이 컸기때문에
미국에서의 첫느낌이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의 배려로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미국생활에 차츰 적응했는데
살아가면서 정말 좋았던면은
이 미국사회가 너무나 합리적이고 높은 시민의식으로 이뤄진 사회라는느낌을 받았읍니다
이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또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느낀점은
너무나 광활하면서도 너무나 잘 계획되어지고 잘 보존되어 있다는점에 놀랐읍니다
안좋은점도 많지만 좋은게 더 많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3. 미국 사회에서 일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무었이었읍니까?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하셨읍니까?
저는 미국에와서 한번도 직장을 다니지 않았지만 자녀들 학교에 자원봉사를 했거나
미국교회에서 봉사할때 느낀점을 말씀 드리겠읍니다.
일단 언어면에서 자유로운 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불편했읍니다
또한 그것땜에 불필요한 오해도 생겼고 그래서 차별 받는다는 생각도 가지곤 했읍니다
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영어실력으로라도 의기소침하게 숨으려 하지않고
당당하게 내 의사를 표현하고 자신있게 행동할때 그런면이 많이 해소되었읍니다
적극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금방 이민해 온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읍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빨리 영어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또한 너무 같은 한인 끼리 모이지말고 다소 힘들더라도 미국교회를 다니고
이웃의 미국인과 교류하며 미국화된 생각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자녀들에게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부모님과는 한국말로 대화할수있게 교육을 꼭 시키셔야합니다
자녀가 영어를 빨리 배워야 한다는 급한마음에 자녀에게 영어만 쓰라고 강요하시면 안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일은
화목한 가정에서의 자녀양육입니다
경제적으로 넉넉치않은 상황에서는 자칫 자녀교육에 소홀할수 있읍니다
직장을 두곳 세곳 다니다보면 너무 힘들고 시간이 없어서
자녀들과 제대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다 생각하시겠지만
짧게라도 주기적으로 자녀와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시고 사랑을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사랑이 듬뿍 필요한 한 그루의 연약한 나무 입니다
Name of third person interviewed: 김효명, 서울, 한국1. 미국에 언제 오셨습니까?
1977년 7월24일
2. 미국에 처음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막막한 사막에 혼자서있던기분
3. 미국 사회에서 일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영어를 못하니 벙어리 아닌 벙어리신세
4.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금방 이민해 온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미국은 건강한몸과마음만 있으면 살수있으며 너무허황된 생각은 하지말고 근검 절약으로 노력하면 대가를 지불하는 곳이 미국이라고
Name of fourth person interviewed: Steve Park, 서울, 한국
- 미국에 언제 오셨습니까?
- Aug. 1990
- 미국에 처음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처음에 미국에 올때는 유타에 있는 BYU 학교에 막바로 갔습니다. 조그만한 도시라 조금 실망하기는 했지만 교육이 목적이기에 그곳에서 학업에 대한 꿈을 가지고 희망찬 생활을 시작했기에 기쁨 마음인 것으로 기억 합니다.
- 미국 사회에서 일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한국에서와는 다른 생활을 했기에 생활을 조절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교육을 만을 신경쓰고 한국이라는 느낌으로 어디에서든지 행동 할수 있지만 이곳은 타국이고 모든 문화를 처음부터 배우는 입장이였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모든 것을 배우고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마음을 다짐해야 했고 그러나 도전과 꿈이라는 것을 품고 시작했습니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워나가야 했습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맞는 기능, 능력을 익히고 지식이 없으면 처음부터 시작하여 배웠습니다. 물론 일반적인 사회 생활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같은 기본적인 생활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미국은 내가 자라온 곳이 아니기에 더욱 강한 정신이 있어야함을 스스로 다짐하고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산다면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강한 열망과 꿈을 이루 수 있게 매일 실천하고 또 계획하고 하나씩 이루기 위해서 노력할때 만들어 진다고 봅니다. 지금 특별히 성공한것은 없지만 3 자녀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건강하게 키우고 아내와 함께 열심히 아름다운 집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 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중요하게 미국에서 안정되게 살아가는 중요 이유 입니다.
-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금방 이민해 온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긍정적인 삶에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갈수 있게 본인의 모습을 바꾸어야함, 그리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 하기에 처음부터 배우기를 주저하지 말고 열심히 배워야함
Name of fifth person interviewed: Kwang Phil Woo, 한국
- 미국에 언제 오셨습니까?
- 12-7-1998
- 미국에 처음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위싱턴 Seatac 공항에 내려 I5를 타고 오는 동안 겨울이었는데도 비가 내리고 있었고 고속도로 주변에는 키가 큰 푸른 나무들이 무성했다. 차안에서 느꼈던 느낌은 책에서 배웠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땅의 과연 크고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 미국 사회에서 일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처음 일할때 어려운점은 첫째는 언어문제였고, 두번째는 문화적 차이였다. 직장내에서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대화에 어려움으로 인해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었다. 주변에 무료 영어 Class를 통해 영어를 배우다가 영주권이 나오고 부터은 Community college에서 ESL class에 등록하여 영어를 배움으로 일을 하는데 불편하지 않을만큼은 영어를 배울수 있었다. 막내아이는 4살때 미국에 오게 되어 Preschool를 다니게 되었는데 낯선 환경때문인지 가지 않겠다고 우는 바람에 같이 울었던 경험이 있다. 너무 성급하게 영어를 가르키려고 했던 것이 어린 나이에 온 막내의 마음을 어렵게 한것이다. 그래서 Preschool를 더 이상 보내지 못하고 몇개월 집에서 있게 한후 Kinder garden을 보내게 되었다. 막내는 어느정도 환경에 적응이 되어서인지 Kinder garden은 의외로 잘 적응했다.
-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금방 이민해 온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교회에 나가라고 권하고 싶다. 교회에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있고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영어공부를 오자마자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어린아이들과 함께 왔다면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게 됨으로 너무 서두르지 말기를 권하고 싶다. 영어를 빨리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낯선 땅에서 마음 고생을 심하게 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Name of sixth person interviewed: 김보강, 한국
- 미국에 언제 오셨습니까?
1973년 5월
- 미국에 처음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너무 넓다. 과연 이 바둑알 처럼 늘어선 저많은 집들 중에 어느 한 곳에 정착 할수있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 미국 사회에서 일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어련운일- 자녀 낳고 기르며 직장생활 하는일. 자녀 교육. 원만한 직장생활 (그땐 한국사람 드물어서)
극복- 참고, 견디고 노력하고.
-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금방 이민해 온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배워라. 무엇이든지 배우고 노력하라. 그래서 자신을 유용하게 만들라.
- 무슨 license든지 취득해라. 언제든지 이용할수 있다.
Name of seventh person interviewed: Thomas “동천” Lee, 서울, 한국
- 미국에 언제 오셨습니까?
1968년
- 미국에 처음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아주 좋았습니다.
- 미국 사회에서 일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어려운일: 언어. 그렇지만 특별히 어려운 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금방 이민해 온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좋은 기회를 늘 알아보세요. 열심히 일하세요. 준비되세요. 더 좋은 기회를 가지게 항상 준비하시고. 그렇게 한다면 비지네스를 하는 것에 재정적으로 성공한 살암이 될 수 있습니다.
Name of eighth person interviewed: 이은미
- 미국에 언제 오셨습니까?
- 미국에 처음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모든 것이 크고 넓어 보였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보였고 평범하게 사람들이 옷을 입고 단녔다.
- 미국 사회에서 일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문화차이가 가장 큰 챌린지였다. 미국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였고 문화적 관습으로 오해도 생기기도 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미국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게 되었다.
-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금방 이민해 온 사람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미국의 관습과 문화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를 하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힘든일이 많지만 미국에 살려면 부지런하고, 스스로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지립심을 길러 야 한다.